*엔딩 후 날조 (시리즈 아님)
*히나코마
*새드? 배드? 내용이 너무 한번에 짐작가서 쪽팔리는 그런 내용
괜찮으신 분은 아래로!
눈을 떴을 때, 코마에다는 좁고 딱딱한 상자 안에 누워 있었다.
앞에 보이는 것은 위에 있는 하얀 천장. 아직 멍한 머리로 내 방 천장은 녹색인데, 라고 멍하니 생각하던 코마에다는 짙은 꽃향기가 주변에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꽃은 예뻐서 좋아하지만 방에 가져다놓은 기억은 없다. 아무래도 자는 사이 다른 곳에 옮겨졌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꽃으로 뒤덮인 채 관 안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고민해보았지만, 마지막 기억은 자신의 방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잠든 것이지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 같은 게 아니었기에 아무 추측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물어볼 상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의 관이 놓여있는 방에는 코마에다 그 한 명뿐이었다.
응, 역시 나 같은 쓰레기 벌레의 장례식에 와 주는 사람 같은 건 아무도 없는 거구나! 내 최후에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야!
그렇게 납득하고, 코마에다는 최대한 균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단상 위에 놓여 있는 관에서 빠져나왔다. 단상 위에서 내려와 보니, 국화꽃이 잔뜩 놓여 있는 단상 위에는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과 촛불 등이 놓여져 있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부모님의 장례식에 비하면 훨씬 조촐하지만 그럭저럭 장례식 분위기는 난다. 약간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 사진을 누가 언제 찍은 것일지 생각하던 코마에다는 등 뒤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흐기야아아아악!!"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우당탕, 소리를 내며 문 앞에 엎어진 사람의 얼굴은 익숙한 것이었다. 새파랗게 질린 채 이쪽을 손가락질하며 유, 유유유, 유, 하는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검은 양복 차림의 소우다에게 코마에다는 생긋 웃어보였다.
"소우다 군이 내 장례식에 와주다니 영광인걸. 몰랐어, 소우다 군이 이렇게 마음이 넓었었다니! 뭐, 나라도 나 같은 쓰레기 벌레의 장례식 같은 건 참여하고 싶지 않겠지만, 아무도 없는 장례식이라는 건 역시 좀 그렇잖아? 덕분에 좀 분위기가 사는 거 같네! ─그런데 말이야, 혹시 소우다 군만 괜찮다면 내가 왜 죽었는지 알려주지 않겠어?"
"유령이다─!!!"
코마에다의 말이 이어질수록 파랗게 질려가던 소우다가 질문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직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험상궂은 표정의 쿠즈류, 그리고 그 옆에는 당황한 표정의 소니아가 서 있었다.
"아, 대체 또 무슨 일이길래 시끄럽─"
귀찮다는 듯 말하던 쿠즈류의 눈이 커졌다. 그의 얼굴은 이내 코마에다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소니아 역시 안 그래도 큰 눈을 더더욱 크게 뜨고 입을 가린 채 코마에다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코마에다는 조금 전처럼 활짝 웃었다.
"야아, 쿠즈류 군에 소니아 씨까지! 다들 정말 마음이 넓구나, 감동했어! 하긴, 생각해보면 내가 죽었다고 이렇게 장례식을 치뤄 줄 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지. 그냥 길바닥에 던져도 상관 없는데 말이야. 뭐, 그건 그렇고. 소우다 군은 대답할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둘 중 아무나 내가 왜 죽었던 건지 알려줄 수 있을까?"
"......너, 살아 있냐?"
코마에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쿠즈류는 표정을 바꾸고 그렇게 물었다. 무슨 꿍꿍이냐고 묻는 듯한, 이 쪽을 의심하고 있는 표정이다. 프로그램 안에서 자주 보던 표정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코마에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 쿠즈류 군도 보고 있잖아?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한 번 죽었던 것 같으니까 모두가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가. 그래도 지금 이렇게 숨도 쉬고 움직이기도 하고 있으니까 살아있는 거겠지?"
"부, 분명히 죽었었다고, 넌!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살아난다는 거야!! 좀비도 아니고!!"
"굉장하네요, 코마에다 씨!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혹시 사후세계를 보고 오셨나요?"
코마에다의 말이 끝나자마자 겁에 질린 소우다의 외침과 흥분한 소니아의 외침이 동시에 울렸다.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코마에다를 보고 있는 소우다와는 달리, 소니아는 당장이라도 방 안에 들어와서 코마에다를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셋 중 누구도 코마에다의 질문에 대답해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또 물어봐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코마에다가 곤란한 표정을 지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니아의 뒤에서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코, 코마에다 군?!"
경악한 표정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초고교급의 희망' 나에기 마코토의 모습에, 코마에다는 이번에야말로 설명을 들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살 시도?"
코마에다의 물음에 나에기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이상의 설명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나에기의 말을 기다리던 코마에다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면서 자신의 오른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기억에 없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당장 피가 나고 있지는 않지만, 아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붉게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꽤 깊게 그었던 모양이다. 한 번 죽었을 정도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손목을 그어서 한 번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심장이 멈췄다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혈액의 손실은 수혈을 하지 않는 한 보충될 수 없다. 발견이 빨라서 수혈을 받았는데도 죽었던 걸까? 알 수 없다.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면서, 코마에다는 자신의 손목에 남은 흉터를 살폈다.
"손목을 그어서 자살이라니, 사춘기도 아니고 참. 정말이지 부끄럽네... 이런 추태를 모두가 보았다고 생각하니까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죽는 것도 얌전하게 죽지 못하고 민폐를 끼치다니, 정말 죽을 때조차 쓰레기답네! 모두의 인생에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으면 좋을텐데.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방법조차 생각이 나지 않으니까."
"......"
"으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자살 시도 같은 걸 한 걸까, 난."
"......응?"
코마에다의 그 중얼거림에,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에기가 반응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에기에게 코마에다는 손을 내저으며 살짝 웃었다.
"아니, 그게. 죽기 직전의 일이 기억이 안 나서. 내 마지막 기억은 재버워크 기지의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자려고 눈을 감은 거라서 말야. 자다가 자해를 했을리도 없고,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거 아냐? 저기, 나에기 군. 혹시 이유를 알고 있다면 가르쳐줄 수 있을까?"
"........."
기억이 안 난다는 말에, 나에기는 장례식장에서 살아난 코마에다를 보았을 때만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이내 천천히 무언가를 납득한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찼던 눈동자에 조금씩 슬픔이 스며드는 것을 본 코마에다는 그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진 나에기의 말은 그 생각대로였다.
"......미안, 대답할 수 없어."
"어째서?"
"코마에다 군의 기억이 없어진 것은, 아마 일종의 자기방어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코마에다 군이 또 자살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그 이유를 말해줄 순 없어. ......나는 코마에다 군이 죽지 않기를 바라니까. ......미안해, 코마에다 군..."
"...... 아하하. 나에기 군은 정말 상냥하네. 이런 쓰레기 벌레가 사는 걸 바라주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숨긴다는 죄책감이 어린, 그러나 결코 자신의 생각을 되돌리지 않을 그의 허무하고 쓸모없는 사과를 코마에다는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무리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나에기의 말은 '죽음'이라는 해답을 선택한 코마에다의 의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으며, 코마에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발언이었다. 이유 없는 삶을 강요하는 행위는 이유 없는 죽음을 강요하는 것과 같고, 죽음은 타인에게 휘두를 수 있는 최대의 폭력이기 때문에.
그러나 코마에다는 '초고교급의 희망'인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이미 신세계 프로그램에 관한 일로 나에기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했을 때 코마에다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두 번 못할 것도 없다. 사는 것이 희망이라고 그가 판단했다면 자신은 거기에 따를 뿐이다.
"뭐, 모처럼 죽었다가 살아난 거고... 나에기 군이 그렇게 말한다면, 열심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정말로, 미안해."
"나에기 군이 사과할 필요 없어! 굳이 따지자면 잊어버린 내 쪽이 잘못한 거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로 모자라서 정말로 죽음을 시도할 정도의 중대한 일이었던 거잖아? 그런 걸 잠깐 죽었었다고 해서 잊어버리는 내 뇌가 문제인거야. 나에기 군은 아무 잘못도 없어! 걱정하지 마. 나에기 군이 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살 테니까!"
다시 한 번 사과하는 나에기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코마에다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슬픔과 죄책감으로 물든 나에기의 표정과 완전히 대조적인, 그야말로 희망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나에기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재버워크 섬은 여전히 숨막힐 듯한 더위에 짓눌려 있었다.
일본에 다녀오니 그것이 확실히 느껴진다. 신세계 프로그램에서 깨어난 뒤 이 섬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서 이 더위에도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장례식장에서 깨어나서 보낸 단 1주일 간의 본토 생활이 그 익숙한 감각을 마비시킨 모양이다. 숨을 쉰다는 행위가 힘들다. 햇빛이 내리쬐는 바깥뿐만이 아니라, 건물 안에 맴도는 공기도 사람의 숨을 틀어막으려는 것처럼 텁텁했다.
그러나 그런 느긋한 감상을 생각하는 것도 첫날 정도였다. 여전히 자신을 귀신 보듯 하는 소우다와 죽은 다음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보려고 안달이 난 소니아,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경계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쿠즈류의 시선을 받아가며 코마에다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보냈다. 미래기관에서 보내오는 일들은 혼자서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양이 많았고, 벅찼다. 개중에는 이걸 어쩌라고, 싶은 어려운 일들도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에 치여서 살면서, 코마에다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가 모자란 기분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식사를 하면서도, 다른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코마에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빠진 것인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에기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그러기도 조금 꺼려졌고, 단순히 허전하다는 느낌만으로 질문하기도 애매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잊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코마에다는 아무에게도 그에 대해 질문하지 못한 채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옷장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처음 보는 넥타이를 발견한 것은.
"......뭐지, 이건?"
코마에다는 그 진녹색의 넥타이를 들어 살펴보았다. 상당히 낡은,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싸구려 넥타이. 옷장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져 있던 그 넥타이는 아무리 봐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코마에다가 가지고 있는 넥타이는 미래기관에서 지급한 검은색 양복과 세트인 검은색 넥타이뿐이다.
"다른 사람 게 잘못 들어왔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코마에다는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가장 최근 세탁물 쪽에 섞여 있었어야 정상이다. 그보다는 이 방을 쓰던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 방은 프로그램에서 깨어난 이후 방치되어 있던 것을 그가 직접 치우고 정리한 방이다. 전 사용자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쓰레기를 버리느라 하루 종일 " "과 함께─
"......?"
누구였더라?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이상은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며 코마에다는 떠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넥타이를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 것인지 몰라도, 자신의 것은 아니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 아무도 모른다면 버리면 그만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코마에다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직후.
"어라, 소우다 군.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힉!"
복도에서 이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던 소우다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살펴보고 있었으면서도, 코마에다를 보자마자 소우다는 기겁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코마에다를 보기만 하면 흠칫거리는 것은 1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던 일이었지만, 얼마 전의 사건 이후로는 더욱 심해졌다. 저렇게 겁이 많으면서 밤 늦게까지 공방에 틀어박혀 기계를 만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코마에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소우다는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너,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응? 여기, 내 방 앞인데. 내가 내 방에 있다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난 소우다 군이 왜 여기 있는지가 더 궁금한데... 소우다 군의 방은 저 반대쪽 아니었어?"
"시, 신경 꺼! 조, 조금 헷갈릴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고함을 지르는 걸로 모자라서, 소우다는 비니를 눌러쓴 채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코마에다가 그의 팔을 붙잡는 것이 먼저였다.
"아, 잠깐, 소우다 군.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좀 물어볼 게 있어."
"......뭐, 뭔데?"
당장에라도 팔을 떨쳐내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우다가 코마에다 쪽을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받고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코마에다는 코트 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냈다.
"조금 전에 옷장을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했는데, 누구 건지 모르겠어서. 내 건 전부 지급받은 것뿐이니까... 혹시 소우다 군은 이거 누구 건지 알아? 아, 혹시 소우다 군 거라던가?"
"......뭐?"
넥타이를 보고 눈을 크게 뜨던 소우다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놀라움을 뛰어넘어서, 그 질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이다. 코마에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소우다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정말 이게 누구 건지 모르겠다는 거냐?"
"응, 모르겠는데. 누구 건데? 내가 아는 사람 거야?"
코마에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굳어 있던 소우다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것은 코마에다에게 '이유를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하던 나에기의 것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한동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코마에다를 바라보던 소우다는 한 손으로 비니를 눌러 쓰고 작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응? 뭐가?"
"......따라 와."
설명하는 대신 소우다는 그렇게만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에 내심 당황하면서 코마에다는 그 뒤를 따랐다.
"......소우다 군? 어디 가는 거야?"
"......"
기지 건물을 빠져 나오고도 꽤 오랜 시간을 걸었으나 소우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신세계 프로그램 안이 아닌 현실에서 이렇게 섬 깊숙한 곳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다. 코마에다의 질문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걷던 소우다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섬 뒤쪽에 있는 작은 산 중턱에 오른 후였다.
"......"
소우다가 발을 멈춘 그 앞에는 꽃으로 뒤덮인 작은 무덤이 있었다. 그 무덤을 본 순간─ 코마에다는 더할 나위 없이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다.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은, 저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강력한 느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코마에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기, 소우다 군? 뭐야, 이건?"
"가서 봐. ─쿠즈류 녀석은 알고도 일부러 입을 다문 것 같지만. 나는 그 녀석의 친구로서, ......그리고 네 친구로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
더 이상은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계속 눈을 돌리고 있던 코마에다는 소우다의 그 태도에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무덤 앞으로 다가갔다. 자신의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우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코마에다는 천천히 무덤 앞의 묘비에 적혀 있는 이름을 읽어내려갔다.
"......히나타, 하지, 메..."
그 이름을 부른 순간, 코마에다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신세계 프로그램 안에서 희망을 부르짖으며 죽어 간 자신을 '카무쿠라 이즈루'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깨워주고, 깨어난 후에도 절망하고 있었던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손을 붙잡아 미래로 이끌어주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과 행복을 주었던─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던 사람을. 그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시간들을.
─그리고 그가 자신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것을.
"히, 나타, 군......"
비틀거리면서 무덤으로 다가간 코마에다는 쓰러지듯 그 앞에 주저앉았다. 작은 무덤 위에 흩뿌려져 있는, 아직 시들지 않은 꽃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얼마 전 소니아가 기지 앞의 꽃밭에서 따고 있던 꽃이다. 그 꽃의 모습이 조금씩 일그러져 하얀색 점으로 비치게 되었을 때, 코마에다는 천천히 몸을 숙여 그 무덤을 끌어안았다.
"......왜, 날 죽여주지 않았어...?"
뺨에 와 닿은 차가운 흙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코마에다는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와 무덤에 놓여 있던 꽃이 그의 머리 위에 살포시 떨어졌다. 그것이 마치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서, 코마에다는 그의 손의 감촉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분명...... 약속, 했으면서... 혼자, 남겨두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코마에다의 머릿속에서, 미래기관에서 보낸 신체검진 결과를 확인한 그 날 나눴던 둘의 대화가─ 이제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는 다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같은 해피 엔딩은 무리인 모양이다.』
『난 상관 없어. 어차피 일찍 죽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고... 히나타 군도 그렇다는 건 조금 가슴 아프지만, 우리 둘 다 세상에 절망을 퍼트린 범죄자인걸 생각하면 오히려 해피 엔딩을 맞으면 안 되는 거잖아? 히나타 군은 그렇게 생각 안해?』
『너 말이다... ......아니, 됐다.』
『그보다 말야, 히나타 군. 부탁이 있어. 굉장히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히나타 군은 마음이 넓으니까... 들어줄 수 있어?』
『......귀찮을 것 같다만 일단 들어는 주마. 뭔데?』
『응, 고마워! 저기, 내 부탁은 말이지... 기왕이면 말야, 히나타 군이 죽기 전에 나를 죽여주면 안 될까?』
『─뭐?』
『나는 혼자 남는 게 정말, 끔찍하게 싫거든. 게다가 봐, 히나타 군은 뇌 수술의 후유증으로 정확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내 병명은 확실하잖아? 전두측두엽치매.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내가 누구인지, 히나타 군이 누구인지도 까먹어 버릴거야. ─그런 건 절대로 싫어.』
『......코마에다.』
『그러니까, 부탁이야. 내가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한 걸 잊더라도, 히나타 군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나를 죽여 줬으면 해. 카무쿠라 이즈루의 재능을 가진 히나타 군이라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리고 잊어버린다고 해도, 히나타 군이 하려는 거라면 내가 반항하거나 저항할 리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응? ...들어줄 거야, 내 부탁?』
『............ 알았어. 혼자 남겨두지 않으면 되는 거지?』
『정말이지? 약속이야!』
『아아, 그래. 약속.』
"거짓말, 쟁이...... 약속도 지킬 줄 모르는 바보...... 히나타 군 따위, 세상에서 제일 싫어......"
닦아줄 사람이 없는 눈물과 함께, 들어줄 사람이 없는 원망의 말을 쏟아내면서 코마에다는 오열했다. 꽃과 함께 무덤을 내리치던 그는 이내, 짓이겨진 꽃잎이 달라붙은 주먹을 힘없이 들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데, 숨도 쉬고 싶지 않은데.
"......히나타 군이 아니면, 난 죽을 수도 없단 말이야..."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의 '행운'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같은, 어쩌면 더 강력한 '행운'의 재능이 있는 히나타가 아니면 아무도 그를 죽여줄 수 없다. 코마에다가 할 수 있는 것은, 비춰주는 이가 사라진 어두컴컴한 세상을 홀로 걸어나가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절망 속에서.
절망 10제 1.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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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붙잡고 썼는데 여전히 어딘가가 모자라고 마음에 안 드는... 그런데 더 고치거나 수정하려고 해도 어디를 고치면 좋을지 모르겠는 그런 상황에서 한참 고민하다 결국 그냥 이대로 업로드를 해버립니다...ㅇ<-< 더 붙잡고 있을 기력이 없어... 차라리 조금 더 생각하고 수정해서 책을 내는 편이 나았으려나 싶기도 한데 절망 10제로 쓰기 시작했던 거였어서 그러기도 애매해서 에헷☆
네 그래서 어쨌든 절망 10제입니다. 코마에다가 기억 못한다는 대목에서 모두가 눈치를 챌 만한 내용이라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요.....(mm ) 주변 애들도 다 대충 뭉개버려서 미안해 죽겠고 으아아 소우다는 어디갔니 공기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니...? 나에기도 악당 중의 악당이 되어버렸고 쿠즈류는 나에기한테 언질을 들어서 허튼짓 못하게 감시하는 거라는 설정이었는데 전혀 못썼어! 뛰어넘긴 부분이 너무 많아 으아아
변명을 좀 해보자면... 이벤트 이후로 연성이 좀 안되는 기분인데 이럴 때 한번 손 놓으면 레알 3개월쯤 연성을 못한다는 걸 저는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어... 그래서 어떻게든 하나 업로드해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으으 부족하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업로드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죽여주셔도 됩니다orz 나중에라도 수정을 하던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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