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에 흩날리는 하얀 눈을 보고 무심코 중얼거리자 코타츠 안에서 대답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간 내내 코타츠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내 다리 위에 엎어져 있던 녀석에게 손을 뻗어 억지로 끌어내자 이내 따끈따끈하게 익은 붉은 얼굴이 꾸물대며 이불 사이에서 올라왔다. 이불에 눌린 탓에 머리가 엉망이지만, 사실 평소와 크게 다른 것도 없다. 그 머리를 대충 한 손으로 빗어주면서 녀석의 머리를 붙잡아 창문 쪽을 보게 했다.
"눈이라고, 눈."
"와아. 눈이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옅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한 번 중얼거린 다음 다시 꾸물거리며 코타츠 안으로 기어들어가려 하는 녀석을 억지로 붙잡자, 몇 번 도리질을 치며 귀찮아하던 코마에다는 결국 머리만 빼꼼히 내 허벅지 위에 내놓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읽고 있던 책을 덮어 탁상 위에 올리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 말야... 올해 첫 눈을 보고 반응이 겨우 그거냐? 나가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어?"
"그치마안─ 오늘은 춥고─ 모처럼 히나타 군이 코타츠도 꺼내 줬는거얼─"
"그거 징그러우니까 하지 마."
다 큰 남자가 말꼬리를 질질 끌어봤자 하나도 안 귀엽다.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칭얼거리는 녀석에게 그렇게 쏘아붙이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밖에 보이는 건물들은 이미 모자라도 쓴 것마냥 지붕이 하얀 눈에 뒤덮여 있었다. 언제부터 오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리는 것이 꽤 거세다. 이래서는 장을 보러 갈 수가 없다. 거의 텅 빈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품 목록─달걀 세 개, 어제 먹고 남은 시금치 볶음,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두부, 핫케이크 가루, 반쯤 남은 된장, 맥주 두 캔─을 떠올려보며 이 빈약한 재료들로 대체 저녁에 뭘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자, 코마에다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이 녀석이, 늘어나니까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있잖아, 히나타 군은 눈 좋아해?"
"......특별히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 뭐, 눈 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냐? 넌 어떤데?"
보복 삼아 녀석의 옷도 잡아당겨줄까 하다가 그래봤자 내 지갑에서 돈이 더 빨리 나가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줬다. 아파 히나타 군, 하면서 투덜대던 코마에다는 내가 손을 놓자 머리를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생글생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으음... 어느 쪽이냐면 좋아하는 쪽? 봐, 눈이 오면 더럽고 추한 보기 흉한 것도 다 깨끗하고 하얗게 눈에 덮여버리잖아. ......오랫동안 그러고 있으면 엄청 추워져서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지만 기분은 좋아. 음식물쓰레기보다 더럽고 불결한 나도 조금이나마 깨끗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아, 물론 정말 그럴 리 없다는 건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잘 알고 있으니까 지적하지 않아도 돼!"
이어진 대답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차가워서 싫다거나, 아니면 깨끗해서 좋다거나 하는 정도의 대답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내가 주워오기 전엔 갈곳 없이 길거리를 전전하며 생활했다고 했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는 건 당연히 고역이었으리라. 거기에 최근에는 별로 말하지 않게 되었던 자기비하 발언까지 되살아났다. 별 생각 없이 물은 것이 트라우마를 건드린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지뢰를 터트리지 않고 발을 뗄 수 있을까.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조심스레 물었다.
"......너, 그 말투, 설마하니 길에서 누워 있다가 눈에 덮인 적이라도..."
"응, 있었어. 히나타 군이 주워주기 전에. 평소 같았으면 어디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았을 텐데 그 때는 3일쯤 굶었던가? 움직일 기력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누워 있었거든. 으음, 그 땐 조금 위험했을지도. 깜박 잠들어서 동사할 뻔 했었으니까. 그래도 마침 근처를 청소하던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발견해줘서 살았지 뭐야. 역시 난 행운이라니까!"
"......코마에다."
녀석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지뢰에서 발을 떼기는커녕, 아래를 내려봤다가 가슴 위에 붉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기분이다. 이 녀석은 웬만하면 옛날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지만, 이렇게 화제에 오르면 평소보다도 밝은 말투로 웃으며 이야기하려고 든다. 그것이 이 녀석 나름의 나에 대한 배려이자 마음 씀씀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배려를 받는 입장이 되는 나는,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녀석에게 배려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마음이 더 무거워지곤 한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짓더니 손을 뻗어 내 얼굴 위에 가져다댔다. 평소에는 차갑기만 한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히나타 군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는데 신경 쓰게 만들어버렸네, 미안. 별로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눈은 좋아해. 추운 건 싫지만. 아, 그래도 히나타 군이 나가고 싶으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따라 나갈 거니까 언제든지 말해!"
"......그래."
화제를 돌리려는 듯 다시 밝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코마에다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 올려 품에 안았다. 당황한 듯 내 이름을 부르는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듣지 못한 척을 하며 흘러내린 스웨터 아래로 드러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눈 속에 있으면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하다고 했던 그 몸은 살짝 뜨겁다 싶을 정도로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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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잠깐 나갔다 왔는데 눈이 내리길래 급 생각나서 끄적끄적
별로 무겁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다가 기분이 가라앉아 버려서 글도 가라앉아 버렸네요 왠지 코마에다한테 미안... 히나타한테도 미안...